2021년 봄.

가까운 친지와 친우들의 초상을 경험한 저는 아득바득 사는 게 뭔 소용이냐는 생각에 빠집니다.

평소 유흥과 사치를 모르고 열심히 살던 그들이었던 까닭이었죠.

네. 명료하게 한 마디로 압축하면,

"죽으면 뭔 소용?"

그렇게 그닥 부유하지 않은 제 마음에 불이 붙습니다.

원래 작고 아담하며 적당히 잘 달리는 차들을 좋아하는 취향이 확고해서 언제나 소형차만을 타왔죠.

남들이 중.대형 세단이나 SUV에 열광할 때도 한결같이 작고 아담한 차들만을 골라서 타왔습니다.

잠시나마 2천년 초반에 z4라는 사치품을 갖고 놀기도 했지만,

대체로 작고 아담한 해치백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확고한 취향으로 인해 평소 마음에 두었던 미니쿠퍼 컨버터블을 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마침 미니가 부분 변경을 통해 막 런칭한 때였습니다.

여태까지의 미니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던 편의장치(열선핸들, ACC)들이 적용되어 상품성이 대폭 올랐죠.

컨바이너 타입이지만 HUD도 있고, 무엇보다 밤운전을 주로 하는 제 입장에서 미니의 밝은 전조등은 굉장한 포인트였습니다.

거기에 새로 추가된 활기찬 색상(제스티 옐로우)과 브라운 가죽 시트는 힘든 설득도 필요없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고 맙니다.

시승 예약을 잡고, 주말에 짧은 시승을 마치고, 곧바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대략 2주 뒤 딜러에게 연락이 옵니다.

"고객님. 차량들이 입고될 건데 반도체 이슈로 하만카돈 옵션이 빠지네요.

대신 가격이 100빠집니다."

컨버터블에 오디오 옵션이 없으면 몹시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바로 거절합니다.

"차라리 열선핸들이 빠지면 모를까 오디오 옵션 빠진 건 곤란하네요."

그렇게 지루하게 또 기다립니다.

뉴스에서는 계속 안 좋은 소식들만 들리고, 미니에선 이상한 물건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반도체가 없어서 이상한 짓으로 뗌빵하는구나 생각하며 계속 기다립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고 바람이 선선해지면서 겨울이 곧 오겠구나 싶던 즈음, 연락이 옵니다.

"고객님, 이번에는 acc랑 오디오가 빠진 애들이 들어옵니다.."

"완전체가 들어올 때까지 연락 안 주셔도 됩니다."

컨버터블을 눈이 올 때 받게 될라나.

그럴 바에야 내년에 벚꽃이 만개하기 전에 나오면 더 좋을 거 같네.

아무리 그래도 연식 바뀌기 전에는 나오겠지.

지금 타는 차 보험 갱신하기 전에 나왔으면 좋겠는데.

오디오만 빠진 게 나왔을 때 얼른 받는 게 좋았을까? 에이 그래도 풀옵이 나으니까..

이렇게 행복회로만 돌리며 계속 기다립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봄도 지나고 여름이 오고.. 어떤 연락도 없이 연식 변경의 7월이 오고 맙니다.

미니 기다리셨던 분들 저 말고도 계시죠? 옵션 보셨습니까? 기가 막힙니다.

순정 네비게이션과 ACC, 열선핸들은 아예 뺐고,

심지어 반도체랑 상관이 없을 브라운 가죽 시트까지 뺀 게 기본 트림이 되었습니다.

웃긴 건 하만 카돈 오디오가 있네요.

네. 작년에 오디오 옵션 하나 빠진 걸 얼른 받지 않은 제가 바보였던 거죠.

그걸 마다하고 해를 지날 때까지 기다려 얻은 건 오디오만 있는 차를 받느냐 마느냐가 된 겁니다.

딜러에겐 일단 올해는 조졌으니 내년 반도체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대기해 보겠다고 연락을 하고,

며칠이 지나 심심할 때 이따금 둘러보던 엔카에서 이상한 매물을 하나 보게 됩니다.

보험이력이 전무한 후기형350AMG팩?

음.. 말이 되나? 내가 대충 아는 바로는 이런 거 보기 힘든데?

결제까지 해서 x히스토리를 봅니다.

정말 없네?

그래서 홀린 듯이 전화를 하고, 거리가 너무 멀어 매물을 직접 보지도 않은 상태로,

괜히 막 믿음이 가는 딜러와 대표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금을 보내고,

다음 날 오후에 탁송기사편으로 차량을 받게 됩니다.

네. 입당 신고한다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