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의 한라산 백록담 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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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살의 한라산 백록담 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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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짤-헉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짤 -여덟살의 한라산 백록담 등정기-1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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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짤-헉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짤 -여덟살의 한라산 백록담 등정기-8번 이미지



얼마전에 아이와 1박2일 소백산 종주한 이야기를 쓴적이 있는데요


초보 산행인이 이번엔 무모하게도

여덟살 아이와 한라산 정상 등정에 도전했습니다


시작은 예정되어 있던 우리가족의 제주도 휴가계획 이었어요


친정엄마가 들으시더니 엄마 다리 성할때, 언젠가 꼳 한라산이 가고 싶다고 하십니다


근데 이 이야기를 하고 며칠 뒤 달력을 보니

엄마의 생신(음력이라 매번 변해요;)이 올해는 저희 휴가기간과 인접 하더라고요


아이셋을 직장 생활하는 딸을 위해 매일 돌봐주시는지라

남편의 양해를 구하고 엄마 생신겸 함께 여행에 모시고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산행경력 20년의 엄마, 4살부터 할머니와 산에 오른 올해 여덟살의 제아들, 산행경력 소백산이 유일한 쌩초보 저 이렇게 셋이 한라산 파티를 짰죠 (남편은 둘째와 막내 돌보기 담당 ㅎ)


초보는 성판악 코스를 보통 오르지만

이번이 여섯번째 한라산 산행인 엄마는 관음사로 가자고 하십니다

관음사가 험준하지만 풍경이 훨씬 좋다고요


걱정이 조금 되지만 근성으로해결하기로 합니다


----------- 산행 전반전 -----------


저희는 아이와 함께 가야하니 아이 짐을 엄마와 제가 나눠져야 해서 가방이 가벼울수가 없습니다

어른만 갈때보다 더 많은 변수에 대비해야 하고, 아이는 어른만큼 뭔가 부족한 상황을 참아 견디기가 힘드니 물도, 먹거리도 남들보다 많이 싸요


얼음물만 아홉개를 챙기고, 주먹밥도 넉넉히, 간식도 넉넉히..

가방 메려면 억소리 납니다



8월 29일 새벽 같이 일어나 준비하고 아이를 깨워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앞에 선게 여섯시 반 이었습니다


관음사 탐방로 초입 구간이 굉장히 쉬워서 이때 속도를 높여 시간을 단축해놔야 하는데

지난 이틀간 해수욕장에서 너무 신나게 놀아버린 아이가 초입부터 안가면 안되냐 앓는 소리을 하네요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 기운이 펄펄 나는 앤데

사실은 아직 잠도 제대로 안깬 시간이라 텐션이 오르질 않는거죠..


이 초반코스에서 저와 엄마가 아이 텐션을 올려주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를 썼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말놀이 게임을 하며 기분을 끌어올려 주고자 거의 한시간을 산행 내내 말을 하다보니 나중엔 어지럽더라고요..


그래도 어느새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저를 뒤에 놓고 펄펄 날듯이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저희 엄마가 아이를 스틱으로 끌어주며 올라가기도 여러번 하며 어찌어찌 삼각봉 대피소에 올랐을때 시간이 이미 11시 30분

한라산 정상의 입산 제한 시간이 2시 30분 이라 시간이 다소 빠듯한 상태였습니다


서둘어 가져온 도시락을 챙겨먹는데, 혹시 몰라 하산중까지 먹을 생각으로 넉넉히 준비한 주먹밥이 아이가 눈을 번뜩이며 먹기 시작하니 무섭게 사라집니다.

여덟살 사내애는 그냥도 많이 먹는데 하물며 한라산을 오르고 있으나..

아이가 먹을 컵라면도 작은걸 하나 가져왔는데 정말 혼자서 컵라면 작은컵 1개와 주먹밥을 산더미로 먹어치우더군요..

그나마 저는 올라올때 중간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어서 열량이 좀 있었는데, 이때 아이가 너무 잘먹으니 친정엄마가 제대로 드시질 못했습니다


----------- 산행 중반전 -----------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12시부터 삼각봉 대피소을 나와 다시 산행을 시작합니다


삼각봉 대피소 이후부터 관음사 코스의 진가가 나오더군요

아름다운 용천교를 내려다보고 뻥 뚫린 하늘 자락을 보는데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진짜 절경이더라고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입니다

한걸음 걸을때 속으로 아 할수 있을까

한걸음 또 걸을때 아이가 엄마 그만 하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수 있나요

무조건 무슨일이 있어도 우리 아들 정상에 올려놓도 말겠다는 일념으로 아이와 50계단씩 세며 오르고 30초씩 쉬기를 반복합니다


평소같으면 엄마가 가장 앞서 가실텐데

최근 간수치가 안좋아져 약을 드시는 영향인지, 휴게소에서 식사를 충분히 못하셨기 때문인지 엄마가 평소보다 힘을 못쓰시더라고요


그런 상황이 되니 제가 더 제몫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평소 없던 에너지가 생겼어요

엄마몫만큼 제가 아이를 챙기고, 간식 정도만 들어있던 아이 배낭도 (아이 배낭은 안전상 메어줍니다 뒤로 넘어질때의 충격 방어용) 제 가방에 메달고..

아이가 힘들다고 할때마다 제 가방 뒷쪽 끈을 잡게하고 끌고 올라가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는 어디서 그럼 힘이 나왔는지 두 사람을 다독이며 계속 계속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동안 다른 등산객들에게 아이는 대단하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고요..

올라가는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서 넋나간 표정 다 저희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ㅋ


머리속에는 우리아들 데리고 정상에 간다 라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 생각만 계속 계속 했네요


아까 썼듯이 초반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후반부에 정상에 오를때 체력이 부족하다보니 더 힘들었고..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어요


두시가 다가오지만 여전히 정상에 못 간 상태..


내내 날씨가 환상적이었는데 설상가상 아래쪽에서 구름이 따라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이렇게 구름이 따라올라와 백록담이 다 가려지면 백록담 모습이 다 가려진다고 걱정하셨습니다


백록담이 자시고 일단 정상까지 가고보자 라는 생각네 다시 천근만근 무거운 발을 옯겼습니다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갈 것 같은 순간이 몇번이나 지나가고

정말 간발의 차로 2시 10분에 한라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백록담도 다행히 깨끗한 얼굴을 보여주더라고요

그치만 이때는 백록담보다 대견한 우리아들 얼굴이 더 빛나보여서 다른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서둘러 인증사진 찍고 주변 풍경 제대로 볼 사이도 없이 입산 제한 시간이니 얼른 내려가라고 방송 나옵니다 ㅠ ㅠ

지금도 이미 늦었으니 서둘러 가야 해지기전에 내려감다고 정상 관리소 직원분들이 재촉하셨어요


인증서 발급을 위한 정상 위치 등록만 바쁘게 하고 성판악 코스쪽으로 내려가려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내려가려 방향 틀자마자 구름이 몰려와 백록담을 가리더라고요


정상에 오른것도 백록담 얼굴을 본것도 간발의 차 였네요...


----------- 산행 후반전 -----------


그런데 내려가려고 걸음을 딛자마자 무릎을 쓸수가 없었어요

올라올때는 제가 앞서가며 아무 문제 없이 왔는데...

지난번 소백산때도 내려갈때 무릎이 후들거려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더 심했어요

한쪽 무릎으로 힘을 아예 줄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워낙 평소 운동도 안하는데다 산행 초보인데

짐도 무겁고 아이을 보조해주느라 힘을 많이 써서 그런것 같았어요


남편에게 부탁해서 미리 사뒀던 무릎 보호대를 일단 양쪽에 찼어요

무슨 무릎 수술한 환자들이 쓸것 같이 거창하게 생긴걸 사다줘서 이걸 창피해서 어케 하고 다니냐고 핀잔 줬는데..

일반적인 보호대보다 훨씬 무릎을 지지해줘서 이 덕을 크게 봤습니다


무릎 보호대를 했어도 한쪽 무릎을 딛을때마다 고통스러웠어서

거의 스틱 두개를 목발 쓰듯이 쓰면서 한발 한발 겨우 딛었습니다


아이와 친정엄마는 내려가는 코스부터는 날아다니기 시작해 저와 거리가 벌어졌어요

중간에서 한참 뒤에오는 저를 기다려 주고 가다가 다시 제가 또 뒤쳐지고.. 이를 악물고 평지코스에서 뛰듯이 걸어서 거리를 좀 좁히고.. 다시 합류했다가 뒤쳐지기을 반복했어요


중간 중간 먼저 가는 아이가 엄마~ 어디야~ 하고 제 위치를 확인하려 지르는 소리를 의지하며 내려갔어요


서두른다고 서둘러도 하산길에는 제 속도가 너무 쳐졌고..

하산하기 시작한 시간 자체가 늦었던 편이라

여섯시가 넘어서도 저희는 아직 한참 하산중이었어요


다행히 베테랑인 엄마가 만약을 대비해 헤드렌턴까지 챙겨오셨고

엄마가 헤드렌턴을 챙겨오신걸 보고 남편이 제주에서 밤길 어두울때 쓰겠다며 아기 손바닥 만한 led 등을 사놨던걸 줬는데..

이거도 휴가 첫날 밤길에서 남편이 짠 하고 꺼내며 켤때 너무 밝아서 남들 눈뽕하고 욕먹을일 있냐며 핀잔줬는데...

정말 이거 없었음 어케 내려왔나 싶어요 진짜 십리밖에도 보이게 밝았거든요..

남편이 앞으로 과하게 준비물 챙기고 가끔 쓸데없는거 사도 앞으로 다시는 토달지 않기로 다짐했고요...


일곱시쯤엔 해가 완전히 져서 저희는 문자 그대로 칠흙같은 어둠에 놓였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무엇이 나무이고 돌인지 형태를 분간할수 없는 어둠

갑자기 어디선가 정체를 알수 없는게 갑자기 튀어나와 달려들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가장 앞에서 친정엄마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길을 살펴 위험한걸 미리 알려주시며 내려가고..

중간에 아이가 아빠가 준 소형 플래시를 모자끈에 메달고 전방을 밝히며 내려가고..

저는 헤드 렌턴으로 제 발 앞 길에 집중하며 제일 마지막에서 내려갔습니다


어둠속에서 거리가 벌어지면 안되었기 때문에 엄마와 제가 계속 호흡을 맞춰가며 눈앞에서 아이의 뒷꿈치 들산화의 반사판이 보이지 않는 거리가 되면 앞의 둘을 멈춰세워 거리를 좁히고, 해가진 이후로는 쉬지 않고 보호대도 풀고 최대한 두 사람 속도에 보조를 맞춰서 이를 악물고 무릎의 고통을 참았어요


해진 숲이 주는 공포는 말로 다 못할 정도라

아이는 겁에 질려 있었고

그걸 잊게 해주기 위해 엄마와 저는 아이에게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를 걸고 농담을 걸면서도

아이가 사방을 둘러보다 어둠에 압도되지 않도록 "위험하니 땅바닥만 집중해서 보라"는 말을 반복해서 해줬어요

실제로 발 딛는 곳을 신중히 고르는게 중요하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숲을 바라보면 정말 당장 오줌을 지리며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서웠어서... 숲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어요


정말 사람의 정신력이란게 신기하게도

해지기 전까지는 무릎이 너무 아파 한걸음 딛는것조차 힘들어 여러번을 쉬었는데

위기의 순간이 오고 그 안에 제 아이와 함께 있으니

여차하면 내 다리 한쪽은 부러져서 산속에 버리고 가는 한이 있어도

오직 내 아이를 안전하게 산 아래로 데려가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몇번 괜찮냐고 쉬지 않아도 되겠냐 하셨지만 저는 괜찮다고 앞으로 무조건 가자고 했고 그럴 힘이 나왔어요

엄마도 더 걱정하는 말 하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그래 지금은 무조건 빨리 내려가야해 하며 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해가 진 이후로도 두시간여를 어둠속을 쉼없이 걸었어요

막판에 아이는 너무 힘이 들고 무섭고, 끝이 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울면서 내려왔습니다


정말로 아이가 기특 했던 것은 한라산 정상에 오른것보다도

이 순간에 아이가 공포에 눈물이 나는데도 울면서 주저앉아 못간다고 포기하지 않고 쉼없이 그래도 계속 움직여준 거예요

그때 아이가 주저앉아 포기했으면 밤중에 업고 가는데도 한계가 있어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버텨줬어요


결국 아홉시쯤 성판악 주차장쪽으로 내려와 하산을 완료 했고

아이가 원하던 한라산 정상 등정 인증서도 발급 받을수 있었어요


내려와서 보니 셋다 온몸에 땀이 물처럼 났더라고요

그 난리를 겪었어도 아이는 인증서를 받고 나니 신나서 웃더랍니다 ㅎㅎ


진짜 인생에 단 한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하루 였네요

열다섯시간을 산행했는데 어른도 못할일을 견뎌내즌 아이한테 말로 다 못하게 고마웠어요


저희는 처음 준비할때부터 내려오는 시간이 늦어져 야간 산행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었어요

물도 넉넉했고 랜턴도 모두 준비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양손으로 스틱을 능숙하게 쓸수 있고 험한 산길에서 발을 놓아야 할 자리를 어른보다 잘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산행이 익숙한 편이었어서 제 몫을 능히 해내는 상태였습니다

(다만 하산길에 제 상태가 예상보다 안좋아 좀 더 지체가 된거죠..)


그치만 이렇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라산 산행은 정말 위험합니다

저희가 내려 올때도 스틱조차 없이, 랜턴도 없이, 핸드폰 배터리도 부족한 상태로 하산중인 분들이 계셨어요


중간에 저희가 합류해 일부 도와드리긴 했지만..

제 다리도 성치 않고, 저는 아이와 함께 있어..

제 머리속에서는 당시엔 인류애 따위는 개나주고 내 애만 무조건 안전히 산 아래로 내려보내겠다는 목표가 세워진 상태라..


그 등산객 분들이 계속 뒤로 쳐지시거나.. 본인들 끼리 다툼;; 하시거나... 투덜대시거나.....어설프게 땅을 딛어 넘어지시거나 하는 모든 일들을 챙겨드릴수가 없어서..


어느 정도 하산한 뒤로는 그 일행분들과 거리를 벌릴수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그분들과 멀어진지 얼마 안되어 뒤쳐진 등산객들을 파악해 마중나온 관리소 직원분을 마주쳐 저희는 랜턴등 다 있으니 뒤에 몇명이 이런 상황에 있다 말을 전해 드렸고..


나중에 모두 안전히 내려오셨더라고요...


낮에 올라가는 와중에도 한라산 정상까지 먹거리도 없이 물 한통만 들고왔던 청년 한분이 거의 쓰러질듯 가물가물한 상태에 있는걸 엄마가 알아보시고 당분될 만한 간식이랑 물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그 청년 무탈하게 잘 내려갔나 모르겠네요..


제주도 여행가는 사람이 늘어나며 한라산도 등산객이 늘었고..

그러면서 장비 없이 가볍게 생각하고 오르는 분도 정말 많았어요..

무엇보다 스틱도 없이 많이 가시던데.. 다녀와보니 한라산을 스틱없이 오르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예요..


어쨌든 아이의 여덟살 생일을 앞두고 대단한 경험을 하고 왔네요

위험한 순간은 있었지만 어쨌든 안전히 내려와 이리 기록을 하고 있으니 ㅎㅎㅎ


겪은일을 생각하면 애가 다시는 산에 안가겠다고 할법도 한대 내려와서 물어보니 한라산보다 낮은 산만 가겠다고 합니다 ㅋㅋㅋㅋ


엄마가 내년엔 설악산 가자고 하시네요 ㅋㅋㅋㅋㅋㅋ



어디든 기록해두고 싶어 장문의 글을 썼는데 혹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

출처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525703?type=recomm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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