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갑오개혁 이후 단발령이 시행되기 전까지 남자들은 승려를 제외하고 성인남성 대부분은 상투를 트고 다녔다. 허나 서양 같은 경우 상투라는 문화 자체가 없다보니 탈모로 고생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수두룩 했었다.
다만 한국은 상투문화가 고조선 이래로 계속 이어져서 속머리를 상투로 가리는 문화가 정착되다보니 전근대 한국인들의 탈모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시대때 인물 초상화 중에는 조선시대 탈모인들의 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조금씩 보이는데 그 이유는 조선시대 초상화들의 특징은 뽀샾을 굉장히 극혐했기 때문이다.
터럭 하나라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했던 조선시대의 초상화 문화였던지라 체제공이 사시였다는 것과, 송창명이 백반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 오명항의 곰보자국 등 신체의 결함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초상화에 반영되었다.
그 중에서는 탈모도 예외가 없었는데 밑에 소개할 윤증(1629~1714)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백문이불여일견, 밑의 초상화를 보자.
위 초상화를 보면 윤증은 탈모가 굉장히 많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상투는 여전히 틀고 있는 것이 초상화에서 잘 묘사되고 있는데, 탈모로 인하여 머리카락이 빠진 앞, 정수리를 제외한 나머지 뒷부분을 영끝하여 상투를 튼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저 상투 스타일을 보아하니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렇다. 일본식 상투인 촌마게 스타일하고 비슷해보인다. 물론 촌마게는 앞머리, 정수리 머리카락을 인위적으로 밀어버렸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앞머리와 정수리 머리카락이 없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머리카락이 없으면 뒷머리를 끌어와서라도 어떻게든 살리려던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유구한 탈모인들의 전통이었다.
출처 : https://www.fmkorea.com/best/5234979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