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여직원에서 시작해 변호사가 된 사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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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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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찾기 / RSS 구독 / 11월 15일(금)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출신으로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양부남 전 고검장.
이 사람은 평범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서 공고를 졸업하고 전남대 법대를 나와 사시에 합격해 검사장까지 오른 소위 흙수저 출신 인물임 (그 유명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검사장 승진에 탈락한 뒤 검찰에 사표를 냈을 정도로 검사장은 검사의 로망임).
양부남 전 고검장이 30대 초반 초임 검사 시절이던 90년대 초반, 사무실에 10급 여직원이 있었음 (지금은 10급 공무원 선발제도가 없어짐).
이 여직원의 이름은 정영미, 담당 직무는 타자수였음. 당시 도덕, 상식, 타자 이렇게 3과목 시험을 치고 검찰 10급 공무원으로 입직함.
1990년대 초반까지는 컴퓨터 보급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각 기업과 각종 조직에서는 사무실마다 수동 타자기를 다룰 줄 아는 말단 여직원들을 고용했었음. 일반 사무직원이 손으로 종이에 문서의 초안을 써서 주거나 혹은 받아적을 내용을 직접 불러주면, 이 여직원들이 수동 타자기를 쳐서 깔끔하게 문서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임.
정영미 씨는 서울 도봉구에 있는 신덕여상 (현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 을 졸업한 고졸 여직원이었음.
아버지는 몸이 불편했고 어머니가 봉제공장에 다니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한 것임.
당시 정영미 씨는 양부남 검사의 성실한 업무처리에 감명을 받았으며, 같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인 양부남 검사가 법조인이 된 것을 보고, 자신도 법조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고 함.
이에 따라 입사 2년 만인 1994년에 사표를 냈고, 양 검사에게 "법조인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뒤 대학교 입시 공부를 해서 1996년에 숭실대 법학과에 입학함.
그리고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2000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뒤 신림동 고시촌에 입성함.
집에서 수험비용을 지원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낮에는 보험회사 상담원, 식당 종업원, 독서실 총무, 화장품 외판원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밤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함.
당시에는 카세트 테이프 문화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고시 학원에서 강의를 소리만 녹음해서 카세트 테이프로 싸게 팔았는데, 수험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학원에 가지 않고 저렴한 녹음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고시원에서 공부했다고 함.
이렇게 공부해서 2003년 사법시험 1차에 처음으로 합격했으나 2차에 낙방했고, 이후 공부를 거듭해서 마침내 2008년, 만 36세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합격함.
사법시험 합격 후에 실제로 양 검사에게 전화를 해서 시험 합격 소식을 알렸다고 함.
당시 1천여 명의 합격생 중에 성적은 300등이었다고 하며, 사법연수원을 제40기로 수료함.
현재는 숭실대 법대 2년 선배이자 사법연수원 1기수 선배이기도 한 남편 우종환 변호사와 함께 개업변호사로 활동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