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투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이 전쟁에서 승리는
어떤 지형도 지나갈 수 있는 차량에
대포를 먼저 장착한 쪽이 가져갈 것이다".
전차의 핵심을 깨뚫은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훗날 프랑스 전차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바티스트 외젠 에스티엔 장군이다.
에스티엔 장군은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발칸전쟁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기관총과 같은 보병 화기들의 사거리와 화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이제 포병의 직접 포격은 그 효과가 반감됐다."
그래서
최초의 비행기가 나온 지 10년도 안된 시점에서
그는
이는 현대전의 상식이다.
에스티엔은 이 개념을 1차 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생각해 낸 거다.
에스티엔은 자신의 발상을 정리해 상부에 보고도 하고 군사잡지에 기고도 했지만 상부는 이 개념을 무시했다.
에스티엔은 프랑스 제2보병사단의 포병 사령관으로 배속된다.
그리고 이때 항공정찰을 통한 집중 포격으로 독일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또한 에스티엔은 1차 대전 발발 직전에 농업용 트랙터에 120mm 포를 장착하는 아이디어를 낸다.
즉 자주포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아이디어는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묻히게 된다.
허나 아쉬움은 잠시 잊어도 좋다
1915년에 참호전의 참상을 목격한 에스티엔은
당시 프랑스 총사령관이던 조제프 조프르에게 전달한다.
바로 탱크 아이디어였다.
조프르와 프랑스 지휘부는 이를 수용하고 개발에 착수한다.
그렇게 에스티엔의 손에서 탄생한 전차가 바로
슈나이더 CA1 전차였고
에스티엔의 손을 거처 간 전차가
에스티엔은 이 전차들을 활용해 협상군에게 승전보를 안겨준 전차의 선각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AS(프랑스 전차부대)는 보병대에게 흡수되어 병합되었다.
에스티엔은 줄곧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전차부대가 독립적인 병과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전쟁이 끝날 시점에 에스티엔은 이미 실권과 영향력이 별로 없었던 반면,
기존의 보병 지휘관들이 대거 고위 지휘관으로 승진하면서 전차부대의 독립은 요원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에스티엔은 1921년에 은퇴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3년 전인 1936년에 사망하였다.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에서 에스티엔이
나와서 정보글 한번 써봄
- dc official App
출처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78405&_dcbest=1&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