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 직후 달려온 영국 극동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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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발발 직후 달려온 영국 극동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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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짤헉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짤 6.25 발발 직후 달려온 영국 극동함대.  -1번 이미지

콜로서스급 경항공모함. HMS 트라이엄프(R16)

1950년 영국의 항공모함 트라이엄프는 가지고 있던 오래된 시 파이어 전투기와 파이어플라이 공격기를 교체하기 위해 호위함 코사크와 유니콘을 이끌고 홍콩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콩에 가까워지고 있을때, 트라이엄프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죠.

"6월 29일까지 미 해군 찰스 터너 조이 중장 휘하의 TF-77에 합류하라"

트라이엄프는 즉시 홍콩에 있는 경순양함 자메이카, 구축함 콘서트와 콘케이드, 초계함 블랙 스완, 모어캠 베이를 호출하였고 여기에 구레 왕립 호주 해군 기지에서 출항한 RFA 숄헤이븐과 급유선 웨이브 콩커러가 합류하면서 항공모함 2척, 순양함 1척, 구축함 3척, 초계함 3척으로 구성된 기동함대를 꾸려 대만 해협에서 미 해군 제 77기동함대에 합류하였고 그 지휘체계 밑으로 들어가 지휘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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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급 항공모함. HMS 유니콘(I72)

하지만 트라이엄프와 유니콘에 실려있던 항공기들은 오랜기간 작전을 해서 한번 정비가 필요했고 이들은 오키나와로 이동해 재정비를 받게 됩니다. 더군다나 유니콘은 항공정비모함으로 쓰이고 있어서 극동지역에서 제대로 된 작전을 할 수 있는 항공모함은 미 7함대의 USS 밸러포지와 영 극동함대의 트라이엄프뿐이었죠. 다만 팬서 제트전투기 80여대를 띄우는 밸러포지에 비해 경항모였던 트라이엄프는 프롭기 24대만 띄울 수 있는 작은 배였습니다. 그렇기에 터너 중장은 우선적으로 자메이카와 블랙 스완에게 명령을 내렸죠.

"자메이카와 블랙 스완은 지금 즉시 강릉으로 이동하여 쥬노와 함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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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 콜로급 경순양함. HMS 자메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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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급 초계함. HMS 블랙 스완

쥬노와 합류한 자메이카와 블랙 스완은 7월 2일 주문진을 향해 내려오던 정체 불명의 함대를 만나게 되었죠. 수송선 10척, 모터어뢰정 3척, 모터건보트 3척 총 16척으로 이루어진 북한의 제 2어뢰정대였죠. 터너 제독의 3척의 초계함대는 경순양함 2척 초계함 1척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체급이 깡패라고 내려온 북한군의 어뢰정대는 어뢰정 1척 건보트 2척을 잃으며 퇴각했고 도망치던 수송선 10척은 쥬노가 쫓아가 모두 격침시켰습니다. 이게 바로 한국전쟁 당시 유일한 함대간 해전인 주문진항 해전이죠. 자메이카와 블랙 스완은 이렇게 낙동강 방어선에 고전하는 북한군의 보급을 차단함으로써 낙동강 방어를 더 수월하게 해주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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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7월 3일. 드디어 트라이엄프가 한반도에 그 모습을 들어냈습니다. 트라이엄프는 12기의 시파이어와 9기 파이어플라이를 하늘로 날려보내면서 동방의 작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뗐습니다. 트라이엄프의 임무는 평양과 해주에 있는 북한의 비행장을 공격하면서 2대의 북한군의 YAK-9 전투기를 격추했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출격에 출격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트라이엄프는 이날부터 7월 8일까지 하루평균 전투항공정찰(CAP) 27회, 대잠초계순찰 10회 라는 정신나간 소티 이행율을 보였고 이때 트라이엄프의 항공기들은 피로 때문에 외피가 찌그러지고 그랬는데 그럴때마다 망치로 두둘겨 펴가면서 출격을 강행했습니다. 결국 7월 8일 구레로 돌아온 트라이엄프는 가지고 온 모든 항공기가 지상 대기로 돌려졌고 7월 9일 새로운 시파이어 9대를 싣고 경순양함 케냐, 구축함 콤무스 그리고 캐나다의 구축함 애서배스칸과 쑤(Sioux)를 데리고 돌아와 목포, 군산, 여수, 인천 일대에 사진 정찰 작전을 했습니다. 그러고도 다음 며칠 동안 2척의 북한군 건보트, 철로, 소형 보급선 및 유류선을 격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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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급 경순양함 HMS 밸파스트.

한편 6월 25일에 일본 하코다테에서 순찰하던 밸파스트는 북한이 38선을 넘었다고 하자 즉시 배를 남쪽으로 돌려 미 해군 TF-77 소속으로써 대만 해역을 수비하러 내려갔지만 7월 5일 TF-77을 떠나 7월 8일까지 사세보 인근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7월 19일. 벨파스트는 드디어 현해탄을 건너 쥬노가 있는 영덕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영덕-강구 전투를 지원하기 위한 벨파스트는 22일 하루동안 350발의 6인치 포탄을 쏟아부었고 정확하게 북한군의 진영으로 꽂아넣음으로서 당시 미국의 순양함 쥬노를 지휘하던 존 히긴스 소장은 "명사수함"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벨파스트는 동해안 지연 작전의 성공을 견인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해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밸파스트는 적의 포탄에 피격되어 수리를 위해 8월 6일 영국 본토로 돌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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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트라이엄프의 해상구조수상기 씨 오터의 파일럿 케인 중위는 미그기의 공격을 피해가면서 거친 원산 앞바다에 추락한 미해군 파일럿을 구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얼마나 다급했는지 씨 오터의 한쪽 부유 플로트가 떨어져나갔고 파도가 집채만하게 일었다고 합니다. 이 씨 오터는 무사히 트라이엄프로 돌아왔고 케인 중위는 미국으로부터 항공 작전 중 영웅적인 활약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에어메달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렇게 영국의 극동함대는 전쟁 초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당시 세계 최빈국을 위해 어마어마한 활동을 해주었습니다. 이들은 이후로도 8월 4일부터 시작된 부산 교두보 전투에 포격지원도 해줬으며 인천상륙작전을 기만하기 위한 작전에도 투입되면서 전라남도 군산부터 강원도 원산까지 오고가며 북한군을 기만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리고 인천 상륙 작전때는 극동함대 25척 모두가 인천 앞바다로 달려와서 월미도와 백령도 일대를 폭격 및 포격을 하면서 상륙하는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의 측면을 지켜주기도 했습니다.

영국이 이 당시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국가적 자존심이 었는지, 아니면 새로운 국제 정세에 접어들면서 자기의 위치를 찾고 싶었는지...하지만 한국 전쟁에서 영국군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작전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주력이 미군이었지만 확실한건 영국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이 상당히 힘들었을거라는 것 입니다.

8만명 이상이 극동의 작은 나라로 날아와 주었고 그 중 1천여명 이상이 우리 이 한반도에 묻혀있습니다. 그들 모두 오늘날의 한국을 본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우리의 희생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한국의 평화를 이루는데 있어 목숨을 바친 많은 호국 영령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출처 : https://www.fmkorea.com/best/590586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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